창문에 적어 두었던 소식들이 서서히 휘발하고 세계의 한 귀퉁이가 접혀듭니다. 사랑하는 헛것들.
─홀로코스트
사랑하는 자는 흐르는 샘처럼 고귀하나 사랑받는 자는 고인 진창을 겪으니, 진창을 견디는 발목, 어둠 속을 서성이는 걸음들.
─롬곡
오래 품은 살殺은 지극히 향기로워진다
뭉개질수록 선명히 솟아나는 참담이 있어
마음은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다.
─살구
몸
영혼의 우주복.
─머무는 물과 나무의 겨울
거짓을 말하는 입안에서 색색의 동그라미가 굴러 나왔지.
혀끝의 평행우주. 헤어짐을 휘감는 중력들.
다정 속에 묻어둔 난간처럼 조금만 스쳐도 혀가 베이는 달콤.
─당분간 달콤.
그 얼굴에 장마 지겠지. 목을 따라 흘러 무릎을 적시며, 마르지도 못하는 마음들.
섞이기에 두려운 순간들. 경계마다 고여드는 숨방울. 눈을 타고 흘러 온 빛에 발끝까지 온통 젖겠지.
시선이 행성이라면 중력을 잃은 별. 서로를 향해 출발하는 빛이겠지.
한번 출발한 눈길은 돌아오지 못하고 다른 이의 외계를 떠도니.
눈꺼풀 안쪽에 달라 붙은 암흑을 봐. 조금씩 나누어 마셔야 하는 파문도 있고 다시 되감을 수 없는 눈썹도 있지.
찢어진 깃발들. 하얗게 식어가는 눈짓들. 어긋난 약속을 교환하던 밤은 호흡을 더욱 작은 조각들로 흩어 놓았고.
기다리는 것은 멀리의 걸음들을 애써 미리 겪어보는 일이었는데.
마음이 기체라면 그 발길마다 내내 폭풍우 들겠지. 젖어드는 눈시울의 물기를 엮어 투명한 직물을 짓는다면,
그 천을 걸치고 사람의 온도에 눈 머는 이도 있으리.
─눈빛이 액체라면
말을 지으려면 혀 밑의 안개부터 거두어야죠
가볍게 웃기만 해도
해안선이 흐린 것들로 뒤덮였다
─우리는 아마도 이런 산책을
몇 번을 다시 태어나고서야
완성되는 장면들이 있어서
비밀은 빛 없이도 가장 환하고
─우리는 아마도 이런 산책을
몸 속에 위독한 가지들을 매달고
주렁주렁 걷는 사람에게
고결은 얼마나 큰 사치인가
─겨울 가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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